v.19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너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어두워서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v.20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어찌 삼키우기를 바랄 자가 있으랴.
v.21 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v.22 북방에서는 금 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v.23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v.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
욥기 (Job) 37장19-24절
'네가 아느냐?'
오늘 QT 본문은 욥기 37장14-24절 말씀입니다.
엘리후가 욥에게 하는 마지막 말입니다.
엘리후는 천둥, 번개, 비, 눈, 그리고 구름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말한 후
또 다시 욥에게 창조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네가 ~~을 아느냐?'
14절 말씀에는 욥을 향한 충고의 말이고
15-16절 말씀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대한 말이고
17-18절 말씀에는 사람의 제한된 능력에 대한 말이고
19-20절 말씀에는 엘리후의 욥에 대한 조롱하는 듯한 말이고
21-22절 말씀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범접할 수 없는 영광에 대한 말이고
23-24절 말씀에는 결론부분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창조주요 완전하신 분이시요 공의로우신 분임을 다시 선언합니다.
그에 비해 사람은 피조물이요 불완전하고 불의하기에
감히 그런 하나님께 불의하다고 따지고 원망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것이야말로 불신앙이요 불순종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창조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엘리후의 오늘 말은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지한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시기에 교만한 자는 징계하십니다.
자연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천문학자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어머어마한 우주를 보면,
그리고 그렇게 큰 우주가 기가막힐 정도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계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도리어 무엇을 모르는 사람은 마치 자신이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광대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
측량할 수 없으신 하나님.
사랑이시되 공의롭고 정의로우신 하나님.
그래서 죄를 범하는 영혼들에게 징계를 통해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마땅합니다.
묵상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위대하신 분이심을 믿는가?
그 분이 하시는 일에는 조금의 불의함도 없음을 믿는가?
하나님의 주신 말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교만한 적은 없는가?
말을 함에 있어 지혜롭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야 하는가?
자기 기준, 자기 감정, 자기 경험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말하지는 않는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가?
그 분을 진정으로 신뢰하고 믿음으로 순종함이 있는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분명한 교훈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집대로 버티는 것은 없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광대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과연 어떤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지,
무지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경외하는 삶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한 가지라도 말씀에 순종하고 말을 조심하며 믿음 위에 바로 서는
행함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