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6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
v.7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노라.
v.8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v.9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욥기 (Job) 32장6-9절
'지혜로운 말'
오늘 QT 말씀은 욥기 32장1-9절 말씀입니다.
32-37장까지는 새롭게 등장하는 엘리후의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5장까지는 욥과 세 친구들 간의 변론이 있었고
26-31장까지는 욥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는 서로의 주장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논쟁이 중단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런 때에 엘리후가 등장합니다.
엘리후는 유다 지파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그는 연소합니다.
나이가 얼마기에 연소한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30-40세 이하로 봅니다.
그는 나이가 어리기에, 연륜이 있는 연장자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욥과 세 친구들의 대화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소강상태에 빠지지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욥과 세 친구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욥에게 대해서는 감히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하는 것을 책망했습니다.
세 친구들에게는 욥이 던진 질문에 대답도 하지 못하면서 비판하는 것을 책망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혜가 무엇인지, 지혜로운 말이 무엇인지를 먼저 선언했습니다.
그 지혜는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지혜로운 말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가 보기에는 욥이나 친구들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또한 나이가 어리다고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닙니다.
흔히들 나이가 든 사람들은 '젊은 것들이 무엇을 알어'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은 나이가 든 사람들의 말에 대해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누가 말하든 배울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대화가 끊어집니다.
심지어 부모는 자녀로부터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시기에 그 분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신령한 지혜라고 말합니다.
각기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경험, 상식, 지식이 다릅니다.
서로 자기 것만 우기면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가 되는 길은 하나님의 지혜을 알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가장 먼저는 성경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모든 것에 대한 지침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경우에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를 때는 금식하며 기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틀에 밖힌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 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 생각, 자기 고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틀을 깨뜨리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습니다.
성장도 없습니다.
누가 말하든 경청하는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묵상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 귀담아 듣는가?
남의 말을 끊고 자기 주장만 하는 것은 아닌가?
나이로, 직분으로, 경험으로 밀어부치기만 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자기와 다르면 화부터 내고 소리부터 지르는 것은 아닌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내가 없이 되나봐라'는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지는 않는가?
대화를 함에 있어 예의가 있는가?
다를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가?
가장 먼저 말씀으로 돌아가 확인해 보는가?
더 의견이 분분한 경우 금식하며 기도하자고 하는가?
오늘 하루, 누구를 만나 대화를 하든, 위로부터 임하는 지혜로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케 하고 화목케 하고 본이 되는 지혜로운 말을 하는
믿음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