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27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v.28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v.29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v.30 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 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v.31 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v.32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v.33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v.34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
욥기 (Job) 21장27-34절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애써야'
오늘 QT 본문은 욥기 21장17-34절까지 입니다.
그 중 27-34절 말씀만 적었습니다.
욥의 소발에 대한 반론이 계속됩니다.
17-18절에서는 소발의 보상신학의 한계에 대해 말합니다.
19-21절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에 대한 불만을 말합니다.
22-26절에서는 인간의 생각을 넘어선,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말합니다.
27-31절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들까지도 다 아는 악인들의 형통함에 대해 말합니다.
32-33절에서는 악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죽음과 조문객들이 많음에 대해 말합니다.
34절에서는 획일적인 보상신학에 근거한 친구들의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음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 악한 사람들이 잘먹고 잘사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의와 공의에 대해,
그리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정말로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다면,
왜 저렇게 악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시는가?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닌가?
욥이 친구에게 고발하는 것처럼
악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평화롭게 잘사는 것에 대해
그들에게 잘못되었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심지어 죽어서까지 많은 조문객들이 따르는 것에 대해
신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악인을 그냥 내버려두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 땅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재앙과 불행이 반드시 죄의 결과만도 아닙니다.
다만 악인과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심판과 복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거기에 대해 빨리 해라고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기복신앙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조차 잘못된 기복신앙이 만연해 있습니다.
부를 누리고, 명예를 얻고, 건강하고, 자녀들도 잘 되는 사람은 신앙이 좋은 사람이고
큰 부가 없고, 건강하지도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신앙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큰 교회는 모두가 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나은 사람들이기 때문이고
작은 교회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모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광대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온전히 안다고 하는 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그런 잘못된 생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 죄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인에 대해 즉각 심판하셨다면
과연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지 겸손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해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교훈을 주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은 전혀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욥이 그들의 말이 설득도 위로도 되지 못한다고 비난한 겁니다.
묵상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부터 봅니까?
공의의 하나님께서 즉시 죄에 대해 심판하셨더라면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말씀을 찾고 묵상합니까?
Sola Scriptura (only Scripture/오직 성경으로)라는 종교 개혁의 외침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 실족할 것이 많지 않습니까?
자신의 기준이, 자신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 주어진 말씀을 묵상하면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온전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먼저 보고 자신을 먼저 새롭게 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세상과 이웃을 향해 기도하는 빛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