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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서 죄에 대해서 가장 진지하고 많이 다루고 있는 책이 로마서 입니다

저도 하나하나 죄들에 대해서 살펴볼때 로마서1 장에 나오는 죄를 참고 했습니다

29-32절까지 21가지 죄의 목록이 나옵니다29절 위에는 동성애에 대한 죄입니다.

이 죄들을 병으로 간주할때 증상이라고 한다면 증상의 원인이 분명이 있을 겁니다.

이 모든 죄들이 등장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곳이 다름 아닌 마음입니다.

반대로 죄가 일어나는 그 원천이 어디냐? 그곳도 마음입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나 잘할수 있다는 겁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고 그럴싸한 다른 방식으로 살수 있다는 겁니다.

 

마가복음 7:21절 이하에 보면 또 여러가지 죄의 목록들이 나옵니다.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13가지 입니다 .

이 죄들은 21절 시작할때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13가지 죄들의 시작이 되는 곳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잠언 616-19절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죄가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이 잠언의 저자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7가지를 자녀에게 알려 주면서 명령을 합니다.

21절에 7가지를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곳이 바로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둔다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마음에 하나님을 둔다는 말은 to test, to approve 하다 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인지 아닌지, 정말로 나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신 분인지 아닌지

test 를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사람들이 아예 test 를 하지 않는 다는 겁니다.

설령 test를 했다 하더라도 그 하나님의 존재를 내 마음에서 approve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가 되면 바로 인간의 삶속에 죄가 역사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에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기준을 인정하지 않고 사단의 속임수를 인정했을때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짓는 다는 것은 반대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라는 표현과 동일합니다.

 

죄가 시작되는 곳이 마음이라고 한다면, 이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곳이겠습니까?

죄가 시작되는 곳이 마음이라고 할때, 사단이 노리는 곳은 어디겠습니까?

바로 우리들 마음입니다.

마음이란 곳은 잠언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의 권원이 있는 곳입니다.

생명의 근원 즉 죄와 사망의 근원에서 멀리할수 있는 삶의 원리가 있다면 다름아닌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죄로 부터 멀어지는 삶,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들이 집중하고 신경써야 하는 것이 뭐냐

바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도록 세상 가치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우리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인간이 처음 죄를 지은 상황을 보면 왜 마음을 지키라고 하는지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듯이 죽으리라

여자가 밤에게 한 말은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한국말 번역이기는 하지만 벌써 몇군데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 그것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뱀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전혀 아닌데도 사단의 말이 못들어오도록 지키지 못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난다는 것은 사단의 twisted 된 거짓을 부정하고 그것이 내 마음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죄가 우리 삶에 들어오면 그 죄는 범죄한 그 사람에게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죄가 확장 됩니다. 하와에게서 남편이 아담으로 죄가 확장이 되었습니다.

하와가 죄를 권할때,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행동을 할때 아무렇지 않게 죄에 동조를 했습니다.

가정에 이런 죄가 들어오듯이, 교회 안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한 사람의 죄는 주위의 사람들을 오염시킵니다.

한사람이 죄를 권할때 다른 지체들은 가만히 그 죄에 동조합니다.

이민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선한 영향력을 서서히 잃어버린 이유가 있다면 바로 자기를 향해 들어오는 죄에 대하여 

본인을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죄를 거슬린 능력은 없습니다. 죄를 거슬릴 능력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신 성령입니다. 

우리가 죄를 이기고 우리 마음을 지켜낼수 있는 능력은 오직 성령께서 가능하게 하십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원하는 마음도 성령께서 붙잡아 주셔야 합니다. 

그 성령님을 의지하여 마음에 하나님 두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삶이 됩시다. 


회개합시다 -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던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부분만 마음에 두기를 원했다면

더욱 철저한 회개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Posted by 유타대학촌교회

오늘은 분쟁이라는 죄에 대한 회개를 하기를 원합니다.

분쟁은 어지러울 紛 다툴 爭 이 합쳐진 한자입니다.

어지럽게 다툼. 말썽을 일으키어 시끄럽고 복잡하게 다툼 이런 뜻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번만 쓰여진 단어입니다. 다른 사도들은 사용하지 않고 오직 바울만 사용했습니다.

바울의 눈에만 분쟁/다툼이 잘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바울만 사용했다는 것이 좀 특이합니다. 

로마서 13:13 쟁투 라고 번역했는데 새로나온 번역본은 다투거나 로 바꿨습니다.

고린도후서 12:20절엔 다툼으로 번역을 했고 나머지는 다 분쟁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 고린도전서 1:11, 3:3, 빌립보 1:15, 5:20, 딤전 6:4, 디도서 3:9 )

어떤 영어 성경은 debate라고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뭐가 분쟁일까요? 구약성경에서 보면 이해하기 쉽게 나온 장면이 있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서로 다툼이 있었습니다.

내 것을 움켜 쥐겠다는 욕심이 그 밑바닥에 숨어 있습니다내가 가진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싸움이 일어나자 아브라함은 즉시 그 분쟁을 끝내려고 조치를 취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다툼이 있을때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을 그것을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저희들도 살다보면 분쟁을 할때가 있습니다.

사람들끼리 분쟁을 잘 하는 영역이 어디이겠습니까바로 정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특히 교회에서 친교할때 성도들끼리 정치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주일 동안 은혜받은 이야기, 성경읽고 깨달은 이야기를 하라고 친교 시간이 있는데 

다들 보면 교회 밖에서 할수 있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교회 안에는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도 있고 진보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수는 무조건 옳고 진보는 항상 틀렸다고 말을 하면 거기서 부터 분쟁이 시작됩니다.

보수는 무조건 틀렸고 진보는 항상 옳다고 말을 하면 거기서도 분쟁이 시작됩니다.

 

이 분쟁의 결론이 뭔지 아십니까서로를 향해서 색깔로 딱지를 붙여 버립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해안가는 파란색, 내륙지역은 빨간색으로 구분한것처럼

철저하게 상대방을 나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말처럼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한 친족입니다.

무조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것을 틀린 생각으로 치부하는 순간 분쟁이라는 죄가 타고 들어옵니다.

 

다윗은 분쟁이라면 치가 떨릴 정도로 싫어했습니다.   

사무엘하 22:44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존하사 

시편 31:20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다윗은 사람들과 말다툼 하는 것 , 분쟁에 엮이고 싶지 않았습니다하나님께 그 자리에 있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자기 주위에 말다툼이 많은지, 분쟁이 많은지 그 자리에 있는 것 조차 기도를 해서 모면을 할 정도였습니다.

시편 56:5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말 꼬투리를 잡는 겁니다. 말 꼬투리를 잡으려는 그들의 머리속에 가득한 것은 사악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분쟁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로마서 1장에 따르면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솔로몬은 잠언 10:12절에서 분쟁의 근원을 미움으로 보고 있습니다.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13:10 절은 교만은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17:19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결론적으로 이사야서 54:15절은

보라 그들이 분쟁을 일으킬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분쟁은 잠언에서 계속해서 알려주고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confirm 시켜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나온 것이 아니면 사단의 성품이고, 사단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부부사이, 부모와 자식사이, 교인과 목회자, 교인과 교인, 교회와 이웃사이에 분쟁이 있습니까?

사단이 역사하고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의 더러운 성격일수도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은 관계를 파괴히고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사단의 고급 전략입니다.


이 전략에서 이길수 있는 길의 어떤 것일까요? 

바울은 우리들에게 무슨 일을 하던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나보다 남을 더 존중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들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시지만 사단도 범사에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사람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분쟁. 즉 다툼을 우리 삶에서 제거하는 것이 필수 있습니다.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내 속에 옛것을 먼저 회개 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우리 삶에서 분쟁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는 오늘 하라구 되기를


Posted by 유타대학촌교회

21세기엔 삼성전자가 한국 제 1의 기업이지만 20세기엔 현대가 재계1위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고 정주영 회장이 정치에 참여해서 실패하는 바람에

현대는 1위를 내주고 2017년 기준으로는 한국 재계30등 안에도 들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러 계열사로 분리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도에 정주영 회장의 아들들이 현대그룹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난을 일으켰는데 그것을 언론에선 왕자의 난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미 자자손손 먹고 사는 것 걱정 안하고 대한민국의 나머지 99.9% 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며 사는데도 더 가지기 위해서 형제들끼리 뺏고 뺏기는 상황을 보면서

과연 정주영씨는 행복했을까? 자녀를 낳은 보람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어제 신문에 정주영회장 기일이라 형제들이 다 모였다는 기사를 봤습니다.얼마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일을 생각하면 그렇게 따뜻한 분위기는

찾아보기기 쉽지 않았을거라는 짐작만 할뿐입니다.

 

성경은 화목을 아주 강조합니다.

잠언 17:1절은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재산이 많고 적음에 촛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화목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처럼 가진것 하나 없는 사람이나 이런 말씀 좋아하지 먹고 살만하고 돈 걱정 안하고 사는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볼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것도 궁금해 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잠언 17장을 지은 사람이 다름 아닌 솔로몬이라는 사실입니다.

삼성 현대를 합친것보다 더 어마어마한 재산과 명예를 가진 사람이 할것 다해 보고 쓴 잠언입니다.

화목을 얼마나 사모했으면 이런 글을 남겼겠습니까?

잠언 18:19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그런데 이 화목함으로 가는 길이 결단코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죽고 못사는 부부도 싸우면 남남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교회를 열심히 섬기다가도 뭔가 수가 틀리면 앞으로 안볼 사람처럼 등지고 삽니다.

등지고 사는 사람이 둘다 천국에 갔으면 과연 그곳이 천국이 될수 있을까요?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예수님도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화목이 왜 이토록 중요할까요? 반대로 하나님은 왜 화목을 깨는 것을 미워하실까요?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가 화목과 연관이 있습니다.

로마서 3:25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화목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기 위한 통로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 동시에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 삼위일체의 한 분이신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화목제물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18 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당신이 먼저 화목함을 몸소 본을 보이고 난 후에 우리에게 화목함을 요구하십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하면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면 우리는 직무유기죄를 짓게 됩니다.  

 

지지난주에 베다니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강사는 멤피스한인침례교회를 30년간 섬긴 박승빈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멤피스 근방으로 해서 교회가 10개나 개척이 되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아주 대단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뭐가 대단하냐?

멤피스한인침례교회에서 싸우고 나가서 교회가 세워집니다. 본교회가 좀 괜챦아지면 또 싸우고 나가서 사람들이 교회를 세웁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 세워서 7개나 세워졌다고 합니다 .7개 중에서 또 쪼개져서 3개가 더 생겼다고 본인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대단합니다.


교회가 화목하지 못하고 나눠지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상대방의 죄가 더 커보이기 때문입니다나는 의로운데 저 상대방은 의롭지 못하고, 나는 문제가 없는데 저 상대방이 못마땅합니다.

우리들은 상대의 눈에 있는 티끌이 내 들보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회개해야 할 죄 입니다.

계속해서 말씀드리지만 내 죄를 예수님이 사하여 주셨다고 내가 회개를 안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 나 사이의 막힌 담을 무너뜨려야 하고, 또 우리 모두가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때 책망받지 않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서 매일 짓는 그 죄를 매일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낫지 영원한 시간속에 더 이상의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어찌 우리가 그냥 설수 있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가 하늘의 보좌를 다 버리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이 개 돼지가 되어서 사는 것 보다 더 불편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사신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이 상상할수 없는 불편함을 겪은 이유가 있다면 바로 화목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굳이 이 땅에 살면서 저지르고 하나님 앞에 설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미워하시는 일이라고 했다면 우리는 6가지 죄는 더 철저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화목하게 되지 못한 곳에 우리의 화목을 드러내야 할것입니다.


회개합시다 - 교회 안에서 누구와 싸워서 안보고 사는 지체가 있습니까? 철저하게 회개해야합니다. 안본다고 그 죄의 영향력도 사라진것 아닙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꼴보기 싫은 인간하고는 상종을 안합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와 사이가 않좋습니까? 목사가 꼴보기 싫습니까? 성도는 거기에 대해서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반대로 목사또한 성도가 꼴보기 싫어보이면

그것도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화목이 안되면 나의 신앙은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교회에서의 모든 말과 행동은 철저한 위선입니다.  

 


Posted by 유타대학촌교회

몇년전만 해도 미국에 사는 부모세대들이 자녀들을 결혼 시킬때 보는 조건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부모의 직업, 경제력, 당사자들의 학력과 직업이었습니다.

유타의 이민자들의 경우 다른 대도시의 한인들과 조금 다를수는 있습니다. 

당사자들은 어떤지 모르나 부모세대는 집안과 직업을 분명히 봅니다.

그런데 요즘은 빚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먼저 본다고 합니다.

Student loan 때문이죠. 물론 U of U 나 USU 나오면 주립대학이라 그렇게 부담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몇년전 미국 CPA 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Student loan때문에 결혼을 연기한 응답자가 15% 정도하고 합니다

경기가 좋을때는 수치가 물론 내려갈겁니다. 

그렇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결혼을 할때 어떤 조건을 먼저 볼까요?

많은 경우 성격을 꼽습니다.그 다음에 경제력이 되겠죠.

교회 다니는 청년들은 어떨까요? 일반청년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교회 안에 청년들이 신앙을 최우선 순위로 볼거라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입니다.

LA나 아틀란타에서 많은 청년들을 보면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봤습니다.

성격이 중요한 것은 맞는 말인데 가끔은 왜 사람들이 성격을 제일 먼저 내세울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헤어질때, 이혼할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세우는 명분도 성격입니다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격을 본다는 것은 나중에 핑계대기 아주 좋은 조건이 됩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의 결혼의 조건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요?

지금 에스라 9장과 10장을 읽어보면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을 것을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0:18절엔 제사장의 무리 중에서도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10:23절엔 레위 사람중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막에서 일하는 사람들, 거룩한 일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해서는 안되는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한 것입니다.

9:2절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방백들과 고관들 즉 지도자들이 더 이 죄에 으뜸으로 앞장섰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모범을 보여야 하는 교회 안의 지도자들, 어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여자들을 며느리로 맞이한 겁니다. 그것도 앞장섰습니다.

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나보네, 둘이 좋아하면 되지, 둘이 사랑한다는데 그거면 됬지...

오늘날 이러한 논리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자녀들과 가정을 이룹니다.

물론 성경에도 유대인끼리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도 나옵니다.

모세가 그랬고, 요셉도 이집트 여인과 결혼했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도 다른 나라 족속 출신 여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단순히 혈통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것을 금지하셨느냐? 그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구약 당시에는 유대인만 유일신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 외의 나라 사람들은 철저하게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을 보면 여러 나라에서 온 여자들을 첩으로 들이면서 그들의 신도 같이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솔로몬이 그 이방여자들을 전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상에게 전도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혈통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냐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냐

아니면 세상 사람, 경제력이 최우선이고 나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고 사는 이방사람이냐? 이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안믿는 사람과 결혼해서 전도하면 되지 라고 하지만, 평상시 다른 사람에게도 전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수로 배우자에게 전도를 하겠습니까?

내가 저 사람을 변화시킬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고 교만한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엔 믿지 않는 사람과는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수 없고, 빛과 어두움이 같이 있을수 없듯이 불신자와 신자가 결혼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주님이 금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거스른다는 것은 명백한 죄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있는 여인들, 이방땅에 있는 여인들과 결혼을 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가난한 사람하고 결혼을 했겠습니까? 그 땅에서 유력한 사람들과 결혼시키지 않겠습니까?

일반적으로 믿음좋은데 가난한 집안과 , 믿음은 없는데 성격은 좋고 부유한 집안중 어느곳에 보낼까요?

대부분의 크리스찬들도 후자를 택할 확률이 아주 높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신앙이, 믿음이 우리가 사는데 옵션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청년부 수련회기간동안 강사 목사님과 대화를 하면서 동부의 유학생사역도 5년전,10년전 20년전과 아주 많은 변화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시대는 믿음은 기본사양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사양입니다있으면 좋은데 굳이 돈 더 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믿음도 있으면 좋은데 굳이 더 수고하고 헌신하며 살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시대가 이시대의 풍조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회적 현상을 바로본 에스라의 행동은 10:1절에 나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한 것입니다.

에스라는 부모님들입니다. 교회의 목사입니다. 교회의 어른들입니다이 사회의 지도자들입니다.

에스라 자신이 그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민족의 죄를 , 공동체의 죄를 , 가정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방식으로 살던 사람의 사고방식을 나도 닮아서 살아온 것을 회개했습니다.

불신자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거룩하지 못한 영적인 습관들을 나와 내 집에,우리 공동체 안에서 처음부터 들이지 말아야 하면

설령 믿음이 없을때 그 일이 발생했다면 속히 뽑아내기를 작정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방법들과 가치관들로 부터 우리를 지켜내고 오직 믿음으로 살기를 작정하며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올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복하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회개합시다 - 사랑하면 되고, 성품만 좋으면 나중에 믿음은 하나님의 때가 되면 믿게 되겠지요... 이러한 논리를 가지고

나를 정당화 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괜챦은 배우자를 내 곁에 두시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내가 믿음으로 결단하는지, 세상적으로 결단하는지 알려 하기 위해서 내 상황을 열어주지 않는 걸까요? 

우리의 세속화 됨을 회개합시다

 

 

  





Posted by 유타대학촌교회

중국의 유명한 철학자 중에 장자 라는 사람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BC 300년경 살던 사람입니다.

장자가 어느날 숲을 거닐다가 아주 큰 새 한마리를 봅니다.

날개 너비는 미터, 눈망울이 3 cm 나 되는 큰 새입니다.

가만히 있길래 그 새를 잡으려고 화살을 겨눕니다. 그런데 그 큰 새가 작은 새를 잡아먹기 위해

노려 보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새는 또 나뭇가지에 있는 사마귀를 잡으려고 날지도 않고

가만히 노려 보고 있는 겁니다. 그 사미귀는 자신 앞에 있는  매미를 잡으려고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매미는 그것도 모른체 그저 맴맴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비정한 먹이사슬의 세계를 보고 깨달은 것이 바로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먹이사슬의 동물 세계에 회의를 느낀 장자는 활을 거두고 돌아서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나이가 몽둥이를 들고 자신을 내리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자가 정신없이 큰 새를 잡으려고 좇아 다니다가 그 사나이의 밭을 다 망가뜨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던지 상관없이 ""만을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주변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나 만을 생각하는 이기심 ( selfishness )이 죄인가?

성경은 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말세의  징조를 알려주는 디모데후서 3:2절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만 사랑하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희생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나만 사랑하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 시간, 내 물질을 사용하겠습니까?

아까워서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어떤 계명이 큽니까? 라고 했을때 마음, 목숨,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고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 사랑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헌금도 합니다. 새벽에 나와서 기도도 하고, 선교도 갑니다

교회에서 굳은 일도 하고 성도들 밥도 해 먹입니다왜죠? 하나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 사랑은 너무 잘하는데 하나님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둘째 계명이 첫째 계명과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첫째 계명이 더 중요하고 둘째는 덜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합니까?

오히려 반대라는 것을 우리는 볼수 있습니다.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으니 즉 하나님 사랑하는 것과 이웃 사랑은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에 대해서 이기적으로 모습으로 대한다, 함부로 대한다면

그 사람의 하나님 사랑이 잘못되었던지, 아니면 예수님이 하신 성경 말씀이 틀렸든지 둘중에 하나 입니다.

예수님이 틀릴이가 없으니까 결국 사람이 틀렸다는 겁니다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에 이기심이 들어갈 곳은 없습니다.

 

이기적이란 말은 결국 내가 손해를 안보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손해를 안보겠다고 작정을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죄는 인간이 지었는데, 십자가에서 못박혀서 죽어야 하고불구덩이에서 죽지도 않고 살아야 되는 죄는 인간이 지었는데

왜 내가 십자기를 져야 되죠? 라고 하나님께 항의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베드로전서 2:21절 이하엔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위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기심 가득한 인간들 때문에 예수님이 당하지 않아도 되는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이기심이 있는 모습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우리를 살게 하려 하심이고 

우리에게 나음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기심에 근거하여 행동했지만 주님은 그 반대로 상대의 유익을 위해서 행동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특징, 하나님의 특징에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기적이지 아니하고 입니다이기적이지 않는 행동은 지난 주일에 했던 설교내용과 연관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을 구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우리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공동체도 이기적인 모습에서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재정에서 이웃을 향한 비율을 점진적으로 늘이는 것이 이기적인 교회가 되지 않기위해

우리들이 할수 있는 장치입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되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직 죄인 되었을때입니다. 우리 인간의 표현으로는 꼴보기 싫을때 가장 귀한 예수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보기 싫은 사람,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 정내미 떨어지는 사람에게

뭔가 해 주는 것은 아깝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을 주님이 덮어 주셨습니다우리의 죄악이 아무리 붉을지라도 그것을 덮으시는 

주님의 사랑이 더 큼을 알고 주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회개합시다 - 지금 나의 삶은 나누어 이기적입니까? 이타적입니까?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헌금이 아깝고

교회 봉사가 아깝께 여겨 지십니까? 회개하셔야 합니다. 지금 그냥 지나가는 것 같지만 당신이 죽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심판을 받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심판의 시간은 내가 인정하고 안하고, 내가 믿고 안믿고에 

상관이 없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결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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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사순절( Lent ) 5번째 주간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용서함을 받은 죄이지만 우리 삶에서 매일 제거해야 합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서도 설교를 볼수 있습니다.

           청년부 수련회가 지난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있었습니다. 강사로 섬긴 남궁현 목사, 찬양, 식사와 후원과 기도로 

           섬겨주신 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교제후 제직회가 있습니다.

 

[섬김]    주일 11시 예배 찬양팀을 섬길 지체를 찾고 있습니다2부예배 주일학교 교사(아동부)로 섬길 손길도 찾습니다.  

 

[일정]     214()-331(): 사순절( Lent )  

            316-18(금-주일): 청년부 수련회 ( 주제 : IDENTITY )

            325(주일): 종려주일 / 성찬식

              326-31(월-토):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41(주일): 교회협의회 부활절 연합예배 @베다니침례교회

 


Posted by 유타대학촌교회

성질급한 사람이 중국집에 갔습니다. 급한 것도 등급이 있다고 합니다

3등급은 짜장면 하나 빨리 주세요

2등급은 제일 빨리 되는 거 뭐예요? 빨리요

최고 1등급이 뭔지 아십니까? 젓가락 까면서 짜장 빨리요!”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을 너무나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사람이 owner인 곳에서 타인종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표현도 바로 빨리빨리입니다.

조급함입니다. 조급함으로 인해서 우리는 일을 망칠때도 있습니다.

조급함, 성급함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오래 참으시는 분입니다.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15절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주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오래 참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이 임했습니다

주님께서 인간의 죄악을 오래 참아주시기 않고 우리처럼 내 맘에 안듣다고

성질을 내셨다고 한다면 여태껏 살아 있을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처음 심판으로 인해 대홍수때 오직 8명의 사람들만 살아 남았습니다.

그것도 처음에 홍수심판을 경고하시고 난 후에 120년 이란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반대로 노아에게 있어서는 방주를 만드는 시간은 120년이었습니다.

아무리 그 당시 사람들이 수백년을 살수 있는 존재였다고 해도 120년 동안이나 오지도 않던

비를 기다릴수 있었던 것은 보통일은 아닙니다

홍수가 올것 같은 기미라도 보였으면 그것이라도 보고 참을수 있었을 겁니다.

120년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어도 노아는 조급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의 삶에서 왜 조급함이 일어나는 걸까요?

그것은 결과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조급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야 하기에 조급합니다.

때를 따라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내가 설정해놓은 것에 맞추어 져야하기 마음이 급합니다.

이런 우리의 죄가 사람에게 대하여서는 어떤식으로 나타나겠습니까?

상대방이 내 뜻데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뭔가를 해 주지 않으니까 화를 냅니다. 분노합니다.

잠언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기는데 쉽지 않습니다.

내 뜻데로 뭔가 이루지지 않는 사람이 범사에 감사하고 살겠습니까?

 

조급하다는 것은 동시에 믿음이 연약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분명 노아처럼 기다릴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것들이 실상으로 다가오기 전까지 그 시간이 믿어지면

조급해 지지 않지만, 그것이 안믿어 지고,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에 저희들이 조급해 합니다.

때로 우리는 좋은 일을 하고도 열매를 기다리지 못하여 인간적인 방법을 쓰려고 합니다.

그러며 이 조급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 가정, 비지니스등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 조급함이라는 죄를 떠나가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믿음입니다.

조급함을 떠날수 있는 길은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욕심이란 내 힘으로 무엇가를 해 보려고 애쓸때 나타납니다.

조급함은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말세의 특징을 언급하고 있는 디모데후서3장에 보면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괘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하나님의 사람들이 버려야하는 조급함은 성격적인 면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죄 입니다.

내 뜻과 내 방식과 내가 원하는때에 이루어 져야만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주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면서

기다리셨습니다.

갈라디아서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조급하지 않고 기다릴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성령께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주심니다.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기다릴수 있는 은혜가 저희들 가운데 넘치기를 간구하기 원합니다. 


회개할 죄 - 조급해서 성질을 부린적이 있습니까? 성격이 불같은 것이 아닙니다. 회개해야 할 죄의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 조급해서 화를 내고, 목회자는 교인들에 대해서, 교인들은 목회자에 대해서, 친구사이에,

직장에서,살면서 조급해 했던 나의 모습을 성령께서 조명해 달라고 간구합시다

Posted by 유타대학촌교회

어렸을때 특히 한국에서 흔히 볼수 있던 장면이고 옛날 드라마에도 한번씩 보던 장면이 있습니다. 

집에 아버지가 있을때 자녀가 전화를 받을때가 있습니다. 

받기 싫은 사람이 전화가 와서 아이에게 아버지 바꿔달라고 하면 아버지들이 아빠 집에 없다고 해라고 합니다.

그것만 전하면 되는데 아빠가 집에 없다고 하래요

아이는 아무런 잘못을 한 것이 없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시키는데로 정확하게 fact만 알려 주었습니다.

제가 자라나던 80년대 초만 해도 이런 행동은 그냥 넘어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교육학적으로는 얼마나 최악인지 나중에 커서 알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거짓말은 해도 되는 것으로 합법적으로 가르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다가 보면 우리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선의의 거짓말 이란 영어표현이 재미있습니다. white lie 한국어 표현은 선의의 거짓말인데

white lie 깨끗한 색을 상징하는 하얀색이 쓰여 진것을 보면 나쁜 의도를 지니지 않고 한 행동이라는 것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새빨간 거짓이든 새하얀 거짓이든 거짓말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말을 함 입니다.

거짓말은 다른 죄에 비해서 우리들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죄입니다.

뭐 거짓말 하는 것 가지고 그래? 라고 할수 있지만 거짓이라는 것은 아주 치명적입니다.

 

청문회와 미국의 경우 의회에 가서 증언을 할때 선서를 합니다.

미국에서는 “I swear that the evidence I shall give, shall be the truth, the whole truth and nothing but the truth, so help 

me God” 라고 선서를 합니다. 이 선서를 하고 나서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나면 위증죄라고 하여 미국에서는 아주 죄질이

심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최고 5년간 감옥에 들어갈수 있는 죄입니다.

미국에서 legal profession, law enforcement, public service jobs 그리고 전문 라이센스가

필요한 직종에서 거짓이 드러나면 라이센스가 박탈당합니다.  

왜 미국에서 위증죄 즉 거짓말을 심각한 것으로 간주합니까?

그것은 거짓이라는 것은 사법시스템의 integrity를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도 거짓을 이렇게 다루는데 성경은 어떻겠습니까?

 

요한복음 8:44 에는 마귀에 대해서 설명할때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거짓이 어디에서 나왔는냐? 다름아닌 마귀입니다.

작은 거짓말이라도 하게 되면 마귀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해야 할 크리스찬들이 거짓을 말할때 마다 마귀에 성품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귀가 하나님에게 했던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함이었습니다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습니다.

이 마귀가 사람에게 했던 시도했던 죄가 뭔가 기억하십니까? 바로 거짓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거짓말했습니다.

죄가 없는 완벽한 상태의 인간이 죄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한 죄가 바로 거짓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이 죄는 마귀가 즐겨 쓰는 방법이고 그 교묘함으로 인해서

거짓말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죄로 되게 했습니다.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증거입니다. 

 

하박국 2:18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 척 하기 때문에 우상은 거짓의 영입니다.

저희들이 사는 이 유타주에 사는 우리들이 특히 조심해야 하고 회개해야 하는 죄가 바로 거짓입니다.

몰몬들이 읽는 책중에 복음원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어번역판 29페이지에 범법이 가져온 위대한 축복이란 대목이 있습니다.

즉 타락이 가져온 위대한 축복이란 말입니다. 타락으로 우리는 선과 악을 택할 수 있는 권리와 육신

그리고 영생을 얻을 기회를 축북받았다고 합니다. 이 말도 안되는 거짓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몰몬입니다.

지난 백수십년동안 몰몬사람들이 살아온 이땅은 거짓의 영이 아주 강력하게 역사하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이 안에 사는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공격할때 아주 잘 사용합니다.

교회들의 문제들을 보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척하는 꾸며 대는 말로 인해서 힘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거짓의 죄는 누가 많이 지을 확률이 높습니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또 말을 많이 할 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일때, 교회에서 교인들끼리 모여서 이야기 할때

사실만을 이야기 해야지 그 사실안에 나의 감정을 교묘하게 썩어서

그것이 사실이것 처럼 말하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색해야 합니다.

크리스찬들이 모여서 이 사람이야기, 저 사람 이야기, 이 교회 저교회 이야기 할수는 있으나

그 속에 사실을 아닌것을 사실인것 처럼 말하는 것이 죄라는 인식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것입니다. 그게 무슨 죄냐? 라고 생각이 들면 이미 거짓의 영에 속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에베소서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우리가 상대에 대해 거짓을 말하면 사실 상대를 욕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비판하는 꼴이 됩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우리가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참된 것을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원합니다.

그동안 참된 것을 말하지 못한 우리의 죄를 회개할수 있도록 성령께 은혜를 부어 달라고 간구하기를 원합니다. 


회개할 죄 - 목사의 거짓이 있습니다. 성도의 거짓이 있습니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하는 것이지만 사단의 성품에 

               참여하는 엄연한 죄 입니다.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 그것부터 회개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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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에 유명한 신학자중에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 카톨릭에서는 이 사람을

천사장 신학자로 칭송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신학교나 연구소도 제법 됩니다.

이 학자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찾아와서 가장 늦게 떠나는 끈질긴 죄가 바로 교만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의미있는 말이고 실감나는 표현입니다.  

교만의 뜻은 국어사전에서는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8: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히브리어에서 교만하다는 단어는 떠오르다, 올리다,높이다란 뜻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긍정적인 뜻으로도 쓰이지만 부정적인 뜻으로도 쓰입니다.

잘난체 하고 뽐내는 것을 기가 살아있다거니 아주 자존감이 높다고 할수 있겠지만

이 단어가 성경에서 긍정적으로 쓰일때는 주로 하나님에게만 사용될때 입니다.

 

교만은 도대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바로 마음입니다.

열왕기하 14:10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역대하25:19 네 마음이 교만하여

히스기야도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쳤습니다.

시편 기자도 131:1절에서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잠언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죄이기 때문에 남들이 쉽게 알수 있는 죄가 아닙니다.

겉으로 교만함을 잘 드러나지 않게 하는 사람들도 있기에 저 사람 참 교만해 라고 하는 사람이외에

교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잘 구분할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제3자에게 가르쳐 주시면 물론 알수가 있기는 합니다.

 

이처럼 교만이라는 것이 우리가 피해야할 치명적인 죄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잠언 16:18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시편 31:23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교만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교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엄중히 다루시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는데

뭐 그렇게 심각하게 다루는 죄가 문제 될것이 있냐? 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그 죄를 내가 안짓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삶속에서 범죄하며 살고 있기에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해야 하며 죄에 대해서는 결단코 관대하지 않고 피흘리기 까지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라는 죄가 또 파괴력이 있는 것은 교만은 사단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유다서 1:6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이사야 14:13-14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교만이라는 죄의 속성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나에게 주어진 위치보다 높은 존재와 같이 되려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 이상을 하는 행동 모든 것이 다 교만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위치 position을 이해 하면 됩니다.

군대는 철저하게 계급사회입니다.

나이, 학벌, 재산의 유무, 인격이나 다른 모든 것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나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서 내가 어디까지 역활을 할수 있는지가 결정됩니다.

나의 위치를 넘어서서 그 위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쿠테타라고 합니다.

특별히 지난 100년 안에는 한국에도 있었고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지역에서 많이 일어난 것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왜 낮은 계급에 있는 자들이 상위 권위에 도전합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판단을 해 보니까, 내가 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는

뭐를 해도 더 잘할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남보다 더 잘할것 같아 보인다는 말은 동시에 남을 깔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 사람 행동이 내 마음에 안든다는 것도 포함합니다

남을 깍아내려서 내가 잘났다는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남을 깍아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판단해야 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목회자나 교회의 리더쉽이 나머지 성도를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반대로 성도들도 목회자나 교회 리더쉽을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직장에서도, 비지니스에서도, 하물며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위치에서 할수 있는 것은 판단과 비판이 아니라 분별입니다.

우리의 위치에서 할수 있는 것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치에서 할수 있는 것은 겸손이라는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겸손이 말을 상냥하게 하고 머리숙여 인사잘하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겸손은 상위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겸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나는 교만하지 않는데, 교만의 죄는 별로 나하고는 연관이 없는데가 아니라

하나님께 나의 교만을 드러내시고, 내 삶의 어느 영역에서 교만한지 그것을 알려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내 삶에서 가장 늦게 떠나는 그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의 겸손의 모습을 따라가기를 결단하는 복된 날 되기를 축원합니다.

 

회개할 죄 - 목회자는 교인보다 더 신앙적으로 산다고 착각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교인들은 목회가 저러면 안되지 라고 생각하고 말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목사면 저렇게 안한다고, 더 잘할수 있다는 것은 철저한 착각입니다. 

나의 boss보다 내가 더 잘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우리보다 부족한 사람을 그자리에 둔 것 아닙니다. 내 삶의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교만하라고 해도 할수 없습니다. 

Posted by 유타대학촌교회

2017년에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나라를 꼽으라면 당연히 북한일겁니다.

몇번의 핵실험을 했고 미사일 실험도 했습니다.

수소탄을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해서 미국을 위협했습니다.

올초에는 하와이에 미사일이 날아오는 중이니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메세지 때문에 온 하와이가 발깍 뒤집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오류였다고 했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사람들은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었을 겁니다.

김정은 작년에 미국을 향해서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트럼프도 질세라 북한이 더는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게 최선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랬던 두 사람이 어제는 갑자기 180도 바뀐 말을 했습니다.

북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요청하면서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5월까지 만나겠다라고 답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얼마전까지 둘 중에 하나는 망해야 끝날것 같은 험악한 말들을 오고가던 것을 생각하면

좋은 현상이기는 하지만 뭔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봅니다.

 

입으로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죽일것 같은 말을 했습니다.

얼마되지 않아 그 말을 뒤집었습니다. 어떤 말을 믿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왜냐면 1994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미국은 영변의 핵시설을 폭격할 계획을 세웠다가 지미카터의 중재로 제네바합의를 도출했습니다

그 때 북한은 더 이상의 원자로와 관련 설비를 일체 건설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2003년도에 이 합의는 파기되었습니다.


한 입으로 단물과 쓴물을 낸것과 같습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단물과 같은 말을 하고

상황이 뒤틀리면 쓴물과 같은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그러면 그럴수 있지라고 하지만 성경은 그것을 죄라고 합니다.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그 입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마땅하지 않는 행동을 야고보 사도가 살던 그 시대의 크리스찬들도 했고

역사속에서 수없이 많는 그리스도인들이 지금도 여전히 이 마땅하지 않다는 이 죄를 저지르며 살고 있습니다.

설탕이 필요해서 설탕인줄 알고 음식에 넣었는데 그 설탕이 소금의 맛을 낸다고 하면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우리의 입술로 하는 쓴 물과 같은 말은 어떤 말이겠습까?

시간만 있으면 사람들과 수군수군하고 중상모략, 고자질, 이간질, 헐뜻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사는 삶, 세상사람들에게 보여 주여야 하는 거룩한 삶에 그렇게 필요없는 정보들을 흘리는 말

나를 과대포장하는 말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모습이야 말로 쓴 물과 같은 말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누군가가 이건 비밀인데, 당신만 알고 있어 라고 하는 말들을 함부로 흘리는 것도

포함됩니다. 다른 사람이나 교회의 비밀을 은근히 흘리면서 그 사람과 교회를 힘들게하는 것

도 쓴물과 같은 말입니다.

 

야고보사도는 31절에서 너희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선생을 다양한 것으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 교회 안에서는 목사나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직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른 실수는 몰라도 이 말에 대한 실수에 대해서는 철저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3장에서 교회의 직분자가 될 사람의 자격중에

이와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으면

여자들도 아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라고 바울이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았습니다.

디도서에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도서15절에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려고 할때 몇가지 자격을 제시합니다.

10절에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들을 책망하게 위해서 교회의 리더를 세웁니다.

내가 불순종의 말, 헛된 말, 속이는 말을 하면서 어찌 다른 사람을 책망하겠습니까?

디도서2:1절에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라고 했습니다.

3:9절은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에 율법에 대한 다툼을 말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말에 대한 죄는 사실 우리들이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너무나 쉽게 짓는 죄입니다.

그냥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말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의 언어, 말에 대하여 

합당한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이사야서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4:8절에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허물과 죄를 도말하고 아예 기억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고 드러낸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교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5:4에서 바울은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예언하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언의 은사가 없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말을 하면

그것이 예언이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리는 말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 예수믿는 사람들의 언어입니다.

오늘 이 부분에 대하여 철저한 회개를 하며

성경의 권면대로 살기 위하여 내 결단을 하며 그것을 못하게 하려는 죄의 세력과

피흘리기까지 싸우려는 자세를 결심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회개할 죄 - 사람들끼리 모여서 교회의 부족한 점을 이야기 하면서 목사, 장로, 권사, 운영위원, 다른 교인들 

                험담을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정치인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정자를 위해 기도해야지 소위 까는 말 해봐야 듣지도 못할뿐더러 부정적인 말만

                하게하는 사단의 꾀임에 속아 넘어 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옵니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살펴서 철저한 회개와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기를 위해 이를 악물어야 합니다. 

Posted by 유타대학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