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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2:31-35

모세가 하나님으로 부터 말씀을 받기 위해서 시내산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내려와여 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내려 오지 않습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았습니다.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저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그러니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라고 아론에게 건의했습니다.

아론이 백성들이 하자고 하는데로 그대로 합니다.

한 공동체 안에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아주 소수의 사람과

그냥 좋은게 좋다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종교생활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일때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때가 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 앞을 가로 막고 섭니다.

 

하나님 앞을 가로 막고 서는 모세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일에 지도자라는 도의적인 책임이 있을런지는 몰라도

그 죄에 대한 책임은 죄를 지은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목이 곧은 백성이라며 진멸하겠다고 말씀합니다.

목이 곧다는 말은 히브리문학에서는 고집이 아주 쎄다는 것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그 고집센 백성들을 대신해서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합니다.

12절에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켜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31절엔 다시 나가서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대신에 자기의 이름을 주의 기록하신 책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고 합니다차라리 나 혼자 죽겠으니 다른 사람들은 다 살려 주십시요 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 기도하는 것의 댓가가 어떤 것인지 잘 볼수 있습니다.

흔히들 중보기도라고 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것,

다른 사람의 필요을 우리도 같이 기도하거나, 대신 기도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포함합니다.

하지만 그 기도를 할때의 우리의 자세가 과연 진정한 중보자의 자세인가?

우리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시려는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서는 중보기도를 할때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때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기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모세도 바울도 자기 백성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지 않는 것을 보고 슬펐습니다.

 

슬프다라는 단어는 안나 라는 원어를 사용했는데

참을수 없는 고통을 뜻하는 감탄사 아하흐 라는 단어와 제발, 바라건대 라는 나 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내가 기도합니다 라는 뜻도 있고 내가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둘을 합하면 내가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을 보니 너무 슬퍼서 기도합니다 라는

뜻이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바로 이 마음이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죄악된 모습에 focus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진멸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에 동요되지 않습니다.

자기의 기대대로 사람들이 움직여 주지 않을때, 자기 원대로 뭔가 이루어 지지 않을때 환경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긍휼히 여겼습니다.

그 마음이 있어야지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때 슬프도소이다란 기도를 할수 있습니다.

 

모세는 지도자입니다. 2백만 커뮤니티를 이끄는 사람입니다.

지도자의 자리, 어느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사람은 모세처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모세와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들 가정에 모세입니다. 우리들 교회에 모세입니다. 교회안에서 목장에서 모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커뮤니티안에 모세입니다.

우리가 사는 커뮤니타, 교회, 목장, 가정안에는 부족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부족하다 못해 뭐 저런 사람들이 있나 싶은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우리의 기준에, 우리의 기대에 모자라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그냥 기도가 아닙니다. 그 기도 안에는 그들의 죄악된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왜 저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나 라는 슬픈 마음을 품는 기도가 우리들이 해야하는 기도가 아닐까요?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모세가 슬픈 마음을 가지고 한 기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제 살펴본 것 처럼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모세의 기도가 응답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라니는 뜻을 접으신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계획에 호소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고 이 땅을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331절에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당신의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주십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이런 기도가 넘치기 원합니다.

우리들의 교회에도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지기 원합니다.


적용: 교회안에서 꼴보기 싫은 사람을 위해서 내 목숨을 내놓을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정도는 가질수 있지 않습니까? 그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꼴보기 싫은 사람, 뭐 저런 인간이 있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라고...

 

 

 


Posted by 유타대학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