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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기도

4월19일 새벽기도

사무엘상 17:20-30

사무엘상 17장에는 몇가지 싸움이 나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히브리 사람과 이방인과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느냐 vs 하나님 없이 내방식으로 사느냐? 의 싸움입니다. 


사울과 다윗의 싸움도 나옵니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사느냐 vs 말씀에 순종하느냐의 싸움입니다.  


다윗과 큰형 엘리압과의 싸움도 있습니다. 

 

내가 인정하고, 이해가 되고 안되고에 상관없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땅은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과의 전쟁중입니다.  

분명 우리들이 싸워야 하는 상대는 블레셋과 골리앗인데 현실세계에서는 같은 아군끼리의 더 자주 그리고 잘 싸움니다. 

다윗의 형 엘리압이 다윗을 나무라고 정죄하고 판단한 것처럼,

교회안에서 같은 교인끼리 서로가 서로를 나무라고 비난하는 일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며, 반대로 성도들도 목회자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일이 더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교묘한 수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문제점을 지적한것 뿐인데, 저사람이 원래 저래, 인격이 모자라 라고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것은 사단이 그것을 이용하여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한 20살이 채 되지도 않은 10대 중반인 다윗의 반응이 있습니다.  

28절에서 큰형 엘리압은 다윗에게 노를 발하였습니다.

너는 여기 왜 왔어?  들에 있는 몇 양을 누구에게 맞겼어? 너 교만하구나, 너 마음이 완악하구나

다윗은 형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그래요?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이스라엘을 모독하는 블레셋에 대해서 나는 말도 못합니까? 라는 표현입니다.

블레셋에 대해서 내가 지나가는 소리로 한 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동생이, 우리 교인중에 지금 나는 유타에 몰몬이라는 엄청난 우상숭배의 영과

대적하러 왔습니다. 진짜 교회도 아니고 예수도 올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The Church of Jesus Christ 

예수님의 교회란 말을 왜 함부로 씁니까내가 이 영적인 전쟁에 최전방에서 싸우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데

거기다 대고, 너 지금 장난하니? 여기가 뭐 너 놀이턴줄 아냐?

니 할일이나 해 라면서 핀잔을 주는 것이 사단이 아니라 같이 교회를 섬기는 형제 자매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방해를 합니다다윗은 형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형의 후원과 걱려로 싸우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돌이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했습니다.

돌이켰다는 것은 형으로 부터 방향을 돌렸다는 말입니다.

전과 같이 한 말이란 26절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라는 말입니다.

 

다윗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표현을 보시기 바랍니다.

골리앗은 절에서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10 절에서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했습니다.

25 절엔 이스라엘 사람 스스로는 자신들의 군대를 그냥 이스라엘로 보고 있습니다.

골리앗이나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나 자신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눈에 보이는데로 입니다.

다윗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 즉 살아있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신분으로 생각합니다.  

오직 다윗만 이스라엘 군대를 살아 있는 하나님의 군대로 보았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지금 이자리에 나오신 분들은 본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대학촌교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유타에서 같이 신앙생활하는 타교회 교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이것은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를 결정합니다.

사실 우리들이 교회에 와서 세상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정치 이야기,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 

저교회가 교인이 늘었데, 이런 수준의 대화를 하면 우리는 골리앗 앞에서 벌벌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준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유타를 어떤 곳으로 보고 있느냐?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가 기회가 있을때 마다 목에 힘을 주고 말하는 것이 유타에 왜 사느냐? 이 질문입니다.

학비가 싸서, 안전하니까, 유타에는 한인들이 많지 안아서 비지니스 경쟁력이 있어서

돈벌 기회가 많으니까. 자연이 좋으니까,직장이 되었으니까

이런말은 블레셋도 하는 말이고 골리앗때문에 무서워 벌벌떠는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만 나 스스로를 본다면,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곳이 주님의 몸된 교회라면 영적인 전쟁터에서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는 군인으로서 우리는 골리앗을 보고 무서워 두려워하는 사람

골리앗의 외침앞에 잠잠코 있는 사람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저편으로 건거가라고 명하시는 예수님을 모습을 보았습니다.

demonic side로 가야 하는 것은 명령입니다. 영적인 전쟁터로 발령받은 것은 명령입니다.  

7: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실제로 이집트에서 나오는 것은 출애굽기 12장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지금 출애굽하기 전인

7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을 구원의 사건으로 볼때,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군대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우리가 좋은 군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회와서 위로받는것 필요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군대의 군인입니다. 

영적 전쟁을 기피하고 나는 군대와서 나와 마음 맞는 사람끼리 이야기하고, 위로받으며 사는 크리스찬은 

좋은 군사로 부름을 받은 , 하나님 군대의 군사로 부름받은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다윗은 앞장서서 나서는 사람이 없는 오합지졸 겁쟁이라고해도, 그 사람들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로 보았습니다.

오직 다윗에게만 이런 안목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싸움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블레셋과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를 대적하는 하나님의 싸움이었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출애굽기 7장에 나온 이 군대라는 단어가 6번 정도 특별하게 사용됩니다.

민수기 4:39절에 삽십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회막 봉사에 입참하여 일할만한 모든 자라

봉사에 라는 단어가 군대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회막에서 봉사하는 것을 군대의 일로 사용했습니다.

회막을 오늘날의 교회로 본다고 할때 교회에서 봉사하고, 교회에서 하는 일들과 사람들은

영적인 군대의 역활을 감당하고 있다는 엄청난 사실입니다.

교회일과 봉사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 일이 하나님의 군대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라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기를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