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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13일 토요일 - '잊지 말고 자손대대로 넘겨주어야 할 은혜'

v.24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그들을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v.25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의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의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v.26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따라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당한 것으로 말미암아
v.27 뜻을 정하고 자기들과 자손과 자기들과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하고 정해 놓은 때 이 두 날을 이어서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v.28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기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에스더 (Esther) 9장24-28절
 
'잊지 말고 자손대대로 넘겨주어야 할 은혜'
 
오늘 QT 본문은 에스더 9:17-28절 말씀입니다.
17-19절은 구원받은 날을 기념하여 잔치를 베풀고 기뻐하는 유다인들에 대하여
20-22절은 규례를 세우고자 하는 모르드개에 대하여
23-28절은 자손 대대로 전해져야 할 부림절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만이 계획했던 유다인 진멸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 유다인들이 원수를 멸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만이 거사날로 잡았던 12월 13일은 역전의 날이 되었습니다.
또한 에스더의 간구로 수산 성에서는 하루가 더 연장이 되어
12월 14일에도 대적들을 죽이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이틀 동안 수산 궁에서만 죽은 대적이 800명이 되었습니다.
 
아달월 14일, 지방에서는 이 승리를 자축하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날인데 오히려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원수를 갚는 날이 되었으니 어찌 즐겁고 기쁜 날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과 상관없이 모르드개는 이 두 날을 (12/13-14일)
온 민족이 대대로 지키는 절기로 할 것을 공포합니다.
그는 먼저 이 절기를 바르게 이해하게 했습니다.
이 날은 왕과 왕비가 잘 해서 반전이 일어난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악한 하만의 계략에서부터 구원받은 날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날은 우리 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손대대로 지키는 절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절기의 의미에 대해 부모 세대가 자녀들에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이 절기가 바로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지켜오는 부림절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시지 않은 유일한 절기입니다.
구약의 모든 절기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셨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나팔절, 속죄일.
여기에 부림절이 있고 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중간사에 만들어진
'빛의 절기' 하누카입니다.
이 날은 유대인들이 성전 정결이 회복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 부림절이 되면 먼저 이 절기 전에 금식부터 합니다.
이 금식을 에스더 금식일이라고 부릅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가기 전에
사흘 동안 금식 한 것을 기억하고 지킵니다.
또한 이 날에는 한 자리에 모여 에스더서를 낭독합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자신의 출신을 숨겼던 것을 기억하면서 가면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기뻐합니다.
 
그들이 지키는 절기를 보면 그 의미가 분명히 들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킨다는 것은 가정에서, 온 나라가 함께
이 절기를 지켜왔음을 의미합니다.
만약 그 의미를 후대에 넘겨주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지켜올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나라를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3.1절, 광복절, 한글날. 
이런 날들은 오직 우리나라에 관계된 귀한 날들입니다.
나라가 독립을 하고, 독립을 이루기 위해 거사를 하고, 독자적인 글을 개발하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유관순 열사가 누군지도 모르고, 일본 앞잡이였다고까지 합니다.
광복에 대한 기쁨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안보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추석도 이제는 고향을 찾기 보다는 해외나 산으로 온천으로 놀러갑니다.
귀한 명절이라기 보다는 휴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넘겨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부림절은 예루살렘에서 만들어 지키던 절기가 아닙니다.
페르시아에 살고 있던 포로의 후손들이 직접 경험하여 만든 절기입니다.
그런 절기가 오히려 본국은 물론 흩어진 모든 유대인들에게 전해져서
지금까지 지켜온다는 것은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본국에서 조차 그 의미가 미미해져가는 절기라면
타국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수 없이 희미해질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믿음이 몇 대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를 내려갈수록 믿음이 더 굳건하게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몇 대만 지나면 유명무실한 믿음의 집안이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음 대에만 가도 완전히 믿음을 잃어버린 집안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세대에서 본이 되고 넘겨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왜 믿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가정에서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만 가면 싸우고, 집에 와서도 다른 사람들 욕이나 하는 것을 보는 자녀들이
믿음생활을 하겠습니까?
본인들도 기도생활, 말씀을 보는 생활, 심지어 주일도 잘 지키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는 그렇게 하라고 하면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지키겠습니까?
부모 곁을 떠나는 순간 신앙생활을 떠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기도로 다시 돌아오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방황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부모님 가슴도 아픕니다.
 
지금 대에서 잘하지 않으면 넘겨줄 것이 없습니다.
영화 제목처럼 믿음의 가문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내려갈수록, 더 큰 믿음을 가진 자녀들이 나와야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그런 가문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기독교에서 지키는 절기를 잘 지켜야 합니다.
종려주일, 고난주일, Good Friday, 부활주일, 추수감사주일, 크리스마스, 송구영신예배.
종려주일과 부활주일은 주일이기에 그래도 지킵니다.
그런데 Good Friday는 유명무실해 갑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통해 죄사함과 영생의 길이 열렸다고
수도 없이 읽고, 듣고, 압니다.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Good Friday에는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갑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 날이 무슨 날인지도 모릅니다.
죽으심이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Good Friday가 없으면 부활주일은 없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바로 절기가 점점 형식화 되어 가고, 종교화 되어간다는 현상입니다.
 
이런 때에 부림절을 만들고 지키는 것을 보면서 도전을 받습니다.
과연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에 무엇을 넘겨 줄 것인가?
가장 중요한 유산은 믿음의 유산이라고 말을 하지만
과연 그 믿음의 유산을 넘겨 줄 준비를 하고 있는가?
오히려 부모 세대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는가 돌아봅니다.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믿음의 본을 보이므로 천 대까지 믿음의 가문을 일으키는
새로운 시작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