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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10일 수요일 - '나만 잘 되면 되는가?'

v.5 이르되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하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모든 조서를 철회하소서.
v.6 내가 어찌 내 민족이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을 차마 보리이까 하니
v.7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 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v.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 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v.9 그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백이십 칠 지방 유다인과 대신과 지방관과 관원에게 전할새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쓰되
v.10 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족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그들은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에스더 (Esther) 8장5-10절
 
'나만 잘 되면 되는가?'
 
오늘 QT 본문은 에스더 8:1-10절 말씀입니다.
1-2절은 죽은 하만의 집을 얻은 에스더와 그것을 관리하게 된 모르드개에 대하여
3-6절은 하만이 보낸 조서를 철회하고 유다인을 다시 살게 할 것을 간구하는 에스더에 대하여
7-10절은 새로운 조서를 허락한 아하수에로 왕과 그것을 실행하는 모르드개에 대한 말씀입니다.
 
'유다인의 대적' 하만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소유는 에스더에게 주어졌고
에스더는 그 모든 것을 모르드개가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에스더는 그 자리에서 자신과 모르드개의 관계도 왕에게 고백했습니다.
실제로는 사촌간이지만 그가 자신을 딸과 같이 잘 보살폈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하수에로 왕은 파격적인 조치를 했습니다.
하만에게 했던 모든 것을 모르드개에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왕의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준 것입니다.
그 의미는 왕적 권한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는 왕 앞에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나갈 수도 있는
높은 직책을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다 잘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살았고 높은 부와 권세를 누렸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남았습니다.
에스더는 다시 왕 앞에 엎드려서 울며 그것을 간구했는데
그것은 하만이 내린 조서를 철회하여 자기 동족을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자신만 살아남고 자기 동족이 다 죽는다면, 친척이 죽는다면
그것을 어찌 보고 있겠으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겁니다.
에스더는 또 다시 그와 자기 동족을 같은 동일시하면서 왕에게 간구했습니다.
 
그녀의 간구에 대해 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으니
나머지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에 달렸음을 알게 했습니다.
그들에게 모든 권한을 주었으니 그들 또한 하만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번 왕의 인장이 찍힌 것은 무효로 할 수 없지만
그 후에 조서를 보내서 앞의 것을 뒤엎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만의 때와 마찬가지로 모르드개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을 동원하여
새로운 조서를 쓰게 했습니다.
하만이 처음 조서를 쓸 때가 니산월 13일이었는데 (1/13일, 양력으로 4/13일)
모르드개가 다시 조서를 쓸 때가 시안월 23일이었습니다. (3/23일, 양력으로 6/23)
그렇다면 그 기간은 두 달 열흘로 70일이 되는 셈입니다.
이것은 유다인이 70년의 포로 기간을 거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과 비교가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급박하기 때문에 왕이 사용하는 전용 말로
인도에서 구스 (에디오피아)까지 조서를 보냈습니다.
역사에 의하면 페르시아의 초대 왕인 고레스 때부터
말 한 필이 하루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마다 마굿간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그 왕이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말과 마부를 모르드개는 사용하여
새로운 조서를 페르시아 제국의 모든 나라에 보냈습니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과
모르드개와 모든 유다인들의 금식 기도로 에스더는 살았습니다.
모르드개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존귀한 존재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여기서 만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살았지만 자기 동족은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것을 에스더는 또 다시 왕에게 구했습니다.
 
그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압니다.
그들 조상들은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었고
그 바벨론이 다시 페르시아에게 망함으로 페르시아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동족의 귀함을 알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살았지만 동족이 다 죽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면 거기는 국적이 없겠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국적이 있습니다.
뿌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만 잘 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동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라가 없어지고 자신만 살아남는다면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냥 상관없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잘 살면 그것으로 행복할까요?
 
우리가 먼저 구원받은 것은 단순히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우리의 가족과 친척이, 친구가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동족을 끌어앉고 기도하며 구원하라고 부르신 겁니다.
바울이 바로 그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만약 자신이 죽어 동족이 살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선언했습니다.
바울 이전에, 에스더와 모르드개 이전에, 위대한 모세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못살게 하던 이스라엘 족속을 하나님께서 멸하시겠다고 하셨을 때
모세는 그럴러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실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을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에스더가 그런 간청을 왕에게 했고 왕은 허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에 살던 모든 유다인들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자기만 살고, 자기만 잘 되면 된다는 극도의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대에서
이런 간구는 우습게 보일지 모릅니다.
어리석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런 간구를 들으시고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믿은 사람이 나라를 위해, 믿지 않는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나라가 있어야 우리가 있습니다.
 
묵상
무엇을 두려워하며 사는가?
하만과 같이 권세를 쥐고, 돈을 가진 자를 두려워하여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없는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불이익 때문에 가장 중요한 구원을 놓칠 것언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심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는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 (시작)이라는 솔로몬의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가?
자기 욕심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가?
믿음의 사람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겠는가?
그런 사람들을 욕하면서도 자신도 그런 길을 가는 것은 아닌가?
조국을 위해, 부모형제와 친척 친구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가?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신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뿌리의 중요함을 아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먼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조국과 믿지 않는 사람들을 품고 기도함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일조하는 충성된 믿음의 일꾼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