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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9월 9일 화요일 - '자업자득'

v.5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말하여 이르되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v.6 에스더가 이르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하니
     하만이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하거늘
v.7 왕이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니라.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심한 줄 앎이더라.
v.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이르되
     저가 궁중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니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v.9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v.10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에스더 (Esther) 7장5-10절
 
'자업자득'
 
오늘 QT 본문은 에스더 7:1-10절 말씀입니다.
1-2절은 에스더에게 소원을 묻는 아하수에로 왕에 대하여
3-7절은 하만의 계략을 고발한느 에스더에 대하여
8-10절은 모르드개를 달려고 한 나무에 자신이 달려 죽은 하만에 대한 말씀입니다.
 
두 번이나 자신을 잔치에 초청한 왕비 에스더가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그는 세 번이나 에스더에게 소원을 물었습니다.
그녀가 원하면 심지어 나라의 반이라도 주겠다고 했습니다.
왕의 세 번째 질문에 에스더가 지혜롭게 그리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살려달라고.
 
왕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감히 누가 왕비의 목숨을 노릴 수 있다는 말인가?
당장, 누가, 어디에서 그런 일을 하는지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 에스더는 그 모든 일을 꾸민 사람이 바로 하만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왕은 노하여 잠시 자리를 떠났습니다.
아마도 그 일에 대해 생각을 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그 순간에 하만은 왕비에게 자신의 목숨을 살려줄 것을 애원했습니다.
하만은 왕비가 유다 출신인 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알았다면 자신이 그렇게까지 유다 모든 사람들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일은 벌어졌고 그는 살고 싶어서 왕비에게 간청했습니다.
아마도 잔치는 끝났다고 여겼기에 에스더는 식탁에서 침실로 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 하만은 애원하며 침실에까지 간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그 때 다시 왕이 들어왔습니다.
왕은 하만이 왕비의 침실에까지 따라 간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히브리어에는 강간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이 말의 원 뜻은 짓밟다, 복종시키다, 강요하다의 뜻입니다.
원어의 의미대로라면 force나 violate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이미 그를 죽이려고 작정한 왕은
상황이 그런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런 말을 의도적으로 했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즉시 왕의 호위대가 하만의 얼굴을 덮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인에 대한 당시 관습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왕의 옆에 있던 내시 가운데 한 사람이
하만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왕에게 전했습니다.
그것은 왕의 암살을 미리 알림으로 큰 사고를 막았던 모르드개를
하만이 죽이고자 높이가 50 규빗이나 되는 나무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하만을 그 나무에 매달것을 명령했고
모르드개가 아닌 하만은 결국 그 나무에 달려 처형을 당했습니다.
 
교만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여긴 자는
결국 그 죄로 인해 자신이 변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악인의 형통함을 결코 부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때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저런 악인들이 잘 되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두시고
의롭고 믿음이 좋은 자들은 고통 가운데 거하게 하시는가?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입니다.
악인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멸하십니다.
자업자득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지금 왕궁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모르드개와 유다 백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모르드개는 왕궁 앞에서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온 유다 백성들 역시 이 상황이 된 것을 알지 못하기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응답이 됩니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중요합니다.
때로는 더딘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때에 응답이 됩니다.
그러니 그 사실을 믿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도 쉽지 않지만 인내하며 끝까지 기도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봅니다.
 
학자들은 이렇게도 말을 합니다.
변덕스러운 아하수에로 왕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
무슨 말인가?
아하수에로 왕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변덕스럽다는 말입니다.
그는 술김에 화가 나서 왕비를 폐위시켰습니다.
새로운 왕비 에스더가 사랑스러웠지만 30일 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비위를 잘 맞추는 하만을 크게 칭찬하며 높였습니다.
또한 그가 한 말을 확인하지도 않고 유다 민족을 멸하는 전권을 허락했습니다.
이제는 에스더와 모르드개로 인해 마음이 바뀌어
하만을 처형케 했습니다.
극적인 반전의 뒤에는 아하수에로 왕의 변덕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감정의 기복은 누구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으로 인해 화를 입을 경우가 많습니다.
리더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쩌면 감정의 기복을 잘 숨기는 사람이 세상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만의 경우와 같이 모르드개를 향한 극도의 분노를 숨기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는 위선은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전지하신 하나님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사람은 마음에 불타는 복수나 미움을 버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죄를 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믿음생활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를 부르는 자업자득을 얻게 됩니다.
 
묵상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다고 원망한 적은 없는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가?
기도의 역사를 믿는가?
때론 더딘 것처럼 보이지만 중보기도를 계속하는가?
누군가에게 보복하겠다는 생각이나 복수를 해 본 적이 있는가?
복수를 했을 때 마음이 어떠했는가?
승리감이 충만했는가?
과연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 것으로 보는가?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을 아는가?
원수 갚은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이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악인들이 반드시 심판받을 것을 알고 (사필귀정) 하나님께 맡기는가?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편인가?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늘 의로운 길을 걸어가려고 애쓰는가?
말과 행동에 있어서 지혜로운가?
최후 승리를 믿으며 끝까지 믿음과 진리의 길을 가겠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지전능 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아시고 악인을 심판하심을 믿고
자신이 복수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나라와 이웃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