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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5월 16일 금요일 - '은혜를 알고 갚는 자'

v.1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v.2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느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v.3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사무엘하 (2 Samuel) 9장1-3절
 
'은혜를 알고 갚는 자'
 
오늘 QT 본문은 사무엘하 9:1-13절 말씀입니다.
1-4절은 사울 집안의 남은 자를 찾는 다윗에 대하여
5-8절은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푸는 다윗에 대하여
9-13절은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아들처럼 대우하는 다윗에 대한 말씀입니다.
 
다윗이 통합 왕이 된 후 주변에 나라를 확장함에 대한 말씀이 8장과 10장입니다.
9장은 그런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한 것은 다윗의 또 다른 좋은 모습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봅니다.
 
다윗은 잘 되고 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가까이 나아갔고 엎드렸습니다.
또한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요나단의 가족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삼상 20:15절을 보면 요나단이 다윗에게 부탁한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다윗은 그 요나단과의 우정을 기억하고 그 집안을 돕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서 혹시라도 사울 집안에 남은 자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그 결과 사울의 아들들은 이스보셋을 마지막으로 다 죽었지만
사울의 손자가 한 명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자를 불러서 두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1. 사울 왕 때 있었던 모든 땅을 다시 주겠다.
2. 므비보셋은 왕자들과 함께 자신의 식탁에서 함께 먹는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전쟁 중에 도망하다가 유모의 실수로
말에서 떨어져 두 발을 다 절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아버지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를 알지 못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사울의 집안은 몰락했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들어서 압니다.
그런데 다윗이 자신을 부르니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다윗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두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다윗의 이런 행동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다윗이 사울 집안의 생존자를 찾는 이유가 사울 가문의 생존자를 돌본다는 명분으로
앞으로 혹시라도 있을 왕권 경쟁자를 자신의 손아래 두고자 한다는 겁니다.
다윗이 그렇게 치사한가?
분명히 다윗이 사울 가문의 생존자를 찾는 것은 요나단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요나단에게 받은 은혜가 있기에 그것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전쟁 중에 이 한 장을 할애한 것은 바로 다윗의 덕치를 돗보이게 하려 함이라고 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갚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개인주의가, 기회주의가 판을 치고 있어서
은혜를 입고도 갚을 줄 모릅니다.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복이 임하겠는가?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존경을 받겠는가?
 
우리 모두는 죄로 마땅히 죽어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오래참으심으로 구원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은혜를 갚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은혜와 사랑을 갚은 길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 첫째요
이웃을 향해 베풀고 섬기는 것이 둘째입니다.
 
요나단은 몰락한 가문 출신에 두 다리를 저는 장애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슬픈 인생이겠습니까?
그런 인생을 다윗은 기억하고 자기 아들들과 같이 대우를 하고
많은 땅도 주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믿음의 공동체 안에는 힘들고 불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지체들을 잘 돌보고 섬기고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큰 죄가 다 용서받았다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사람을 외모나 가진 것으로 차별을 합니다.
또 자신의 이익에 따라 너무나도 쉽게 배반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그로 인해 하나님 나라가 막히고 있습니다.
 
다윗은 위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 좋은 관계는 수평적으로 이웃과도 좋은 관계를 나누게 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가로채고
자신과 다르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시하고 차별하고 비방하는 말을 합니다.
짐승도 은혜를 알고 갚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인간이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짐승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요는 은혜입니다.
은혜가 크면 클수록 섬기고 나누고 베풀고 낮아집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지 않고 은혜를 갚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말씀을 묵상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묵상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늘 기억하는가?
은혜의 빚진 자, 사랑의 빚진 자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나눔과 베품이 있는가?
최소한 받은 은혜에 대한 되갚음이 있는가?
교회 연약한 지체들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베풀고 돕는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섬김이 있는가?
말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한 번도 섬김이 없다는 것이 가능한가?
약속을 잘 지키는가?
아름다운 우정을 계속 간직하는가?
은혜를 잊어버렸다면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섬김으로 나눔으로 빚을 갚아가는
충성된 일꾼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