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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4년 1월 10일 금요일 - '행한 대로 받는다'

v.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악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v.11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v.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v.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v.14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을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v.15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너희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희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v.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자같이 되리라.
                                                            오바댜 (Obadiah) 1장10-16절
 
'행한 대로 받는다'
 
오바댜 선지자는 일반적으로 BC 587-538년 사이, 즉
남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후, 바벨론이 다시 페르시아에게 망할 사이에
활동했던 선지자로 봅니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의 종' 혹은 '여호와를 예배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묵시(vision)이 임했습니다.
 
오바댜 선지자는 다른 선지자들처럼 남 유다나 북 이스라엘을 향해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가 아니라 에돔의 심판을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제 에서가 세운 나라입니다. (신명기 2:12절)
위치는 예루살렘 남동쪽, 사해 가까운 지역으로 오늘날의 요르단 입니다.
형제 나라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이후로 원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에돔을 심판하시는가?
1. 그들의 교만 때문입니다.
그들의 교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리적인 조건에 대한 교만입니다.
그들은 해발 1,500m 이상 되는, 사방은 절벽처럼 가파른 곳에 위치했습니다.
그래서 난공불락의 요새로 감히 넘볼 자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요르단에 있는 페트라가 바로 이 지역입니다. 영화에도 종종 나옵니다)
 
다른 하나는 지혜에 대한 교만입니다.
그들은 지리적인 위치 뿐만 아니라 주변 어떤 나라보다 지혜롭다고 여겼습니다.
실제로 오바댜서를 기록할 당시 그들은 '언변의 대가'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솔로몬처럼 질문을 하면 막힘이 없이 대답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지혜로 주변을 깔보았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는 겁니다.
 
2. 그들의 욕심 때문입니다.
그들은 팥죽 한 그릇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장자권을 팔았던 에서처럼
그들은 무력을 통해 주변 나라들로부터 많은 것을 빼앗가 견고한 요새 안에 두었습니다.
이런 말씀이 신약에도 있습니다.
히 12:16-17절은 바로 이 욕심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3. 그들의 무자비함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다와 형제 지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돕는 자가 아니라 원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출애굽 할 때 그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를 구했지만 거절했습니다.
때로는 블레셋과 연합하여 공격했습니다. (역대하 21장)
심지어 그들이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망할 때 수수방관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바벨론의 편에 붙어서 기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대로 심판하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15절)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그들도 징계하셨지만
그들이 징계받을 때 긍휼히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던 에돔도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을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긍휼히 여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행복으로 여기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것도 형제 자매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는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에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아닌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교회가 서로 싸우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떤지?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 교회가 하나 될 것을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의 공동체가 미움 시기 질투로 갈라지고 있으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께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지.
 
그렇게 교회 공동체를 흔드는 사람들은,
그렇게 형제 자매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모함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한 대로 공의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행한 그대로 그들의 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교만과 욕심과 무자비 즉 긍휼이 없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교만하고, 욕심이 많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때로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만 외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시지만 죄는 미워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은 자로, 은혜를 입은 자로, 긍휼을 받은 자로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갚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묵상
자신이 좀 더 가진 것으로 인해 남을 무시하고 깔보는 것은 없는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한 솔로몬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신이 좀 더 가진 것은 나누어주라고 주신 것은 아닌가?
'배워서 남주고, 벌어서 남주고'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탐심은 우상이라는 말처럼 세상 것에 대해 욕심을 부리는 것은 없는가?
그 욕심이 자신을 노예로 만든다는 사실도 아는가?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말처럼 자신의 과거를 잊고 쉽게 비판하는 것은 없는가?
믿음의 지체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비록 다른 것이 많고 심지어 미워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왜 예수님께서 사랑을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는가?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랑인데 가장 쉬운 것처럼 여기는 것이 오늘날은 아닌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성경의 진리인대 당당한가?
죽음 이후, 공의로우시고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보다 나아져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오늘 하루, 오바댜 선지자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사랑으로 대하는지
아니면 무관심과 더 나아가 미움으로 대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이웃에게 사랑과 긍휼을 베품으로 하나님의 칭찬받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