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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2013년 8월 30일 금요일 - '억지가 아닌 어려운 부탁'

v.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v.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v.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v.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v.12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v.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고자 하나
v.14 다만 네 승락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빌레몬 (Philemon) 8-14절
 
'억지가 아닌 어려운 부탁'
 
오늘 QT 본문은 빌레몬서 1-14절 말씀입니다.
(빌레몬서는 1장밖에 없음)
1-2절은 발신자와 수신자에 대한 말씀이고
3절은 문안인사의 말씀이고
4-7절은 빌레몬의 리더십으로 인한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에 대한 말씀이고
8-14절은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에 대해 정중하게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28장에 나오는
로마의 셋집에서 2년 동안 포로의 몸으로 있을 때 쓴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대략 AD 61-63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봅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와 함께 포로서신 (prison epistle)으로 불립니다.
 
빌레몬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골로새 출신입니다. (지금의 터키에 위치)
그리고 그는 교회 공동체의 리더였고 그의 가정은 교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압비아는 아내로, 아킵보는 아들로 봅니다.
그러니까 온 가족 공동체가 교회를 섬기는 아름다운 가정의 가장이요 리더였습니다.
 
바울은 그를 자신의 사랑을 받는 자로, 동역자로 불렀습니다.
그의 믿음과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함께 한 사람들이 평안함을 얻기에 기쁨과 위로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에게 몇 명의 종(혹은 노예)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네시모가 그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그 오네시모가 빌레몬으로부터 도망을 했습니다.
골로새에서 도망하여 로마까지 왔습니다.
로마에서 그는 바울을 만났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 낳은 아들'로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오의 영적인 아버지입니다.
 
바울은 빌레몬 (주인)과 오네시모 (종) 두 사람 모두를 압니다.
두 사람 모두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바뀐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명령할 수 있는 위치이지만 (나이로 보나, 위치로 보나)
빌레몬에게 정중하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것을 권합니다.
 
빌레몬이 너무 잘 해주었기에 주인을 우습게 알고 오네시모가 도망을 했는지,
그가 게으른 종이어서 책망이 두려워서 도망을 했는지
그가 가난했기에 주인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을 했는지
그것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가 종으로 감히 주인의 허락도 없이 도망한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종/노예는 상품이요 물건입니다.
언제라도 주인의 마음에 따라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인에게 해를 끼치고, 허락도 없이 도망을 갔다면 그것은 죽여도 무방합니다.
 
바울의 입장이 아주 난처합니다.
두 사람 모두를 아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험악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를 사랑하고 동역자로 여깁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를 화평케 하기 위해 편지를 쓰며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그것은 주 안에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믿고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무익하지만 지금은 바울과 빌레몬에게 유익한 자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빌레몬이 사랑과 믿음으로 좋은 소문이 난 사람이기에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얼마든지 나이로나, 위치로나, 그들에게 행한 선한 일로 인해 얼마든지 명령할 수 있습니다.
권위로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빌레몬이 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빌레몬 집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빌레몬은 부유한 자로 가정을 열고 교회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그 사랑과 은혜를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변 사람들은 빌레몬으로 인해 평안을 느꼈습니다.
그는 재물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약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었습니다.
주인이라고 권위만 내세우고 강압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바울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사와 기쁨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묵상
가정을 열고 섬기는 곳으로 사용하는가?
믿음의 동역자로 여김을 받는가?
믿음과 사랑으로 섬기는 자인가?
복음 안에서 자녀를 낳은 (믿게 하고 자라게 함) 경험이 있는가?
복음 안에서 변화가 되었는가?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가 되었는가?
믿는다고 하면서 변화가 없이 여전히 같은 삶은 아닌가?
주변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는가?
혹시 가는 곳마다 분쟁을 일으키고 이간질을 시키고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지는 않는가?
중간에 끼어서 중재역할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했으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없는가?
억지로 섬기는 것은 없는가?
자기가 베푼 것을 빌미로 하기 싫은 것을 강요하는 것은 없는가?
나이로, 위치로, 행한 것으로 인해 강압적인 것은 없는가?
권위는 있어야 하지만 권위주의는 없어야 하지 않는가?
교회 공동체가 기도하는 공동체인가?
교회 공동체가 차별이 없는 공동체라고 여기는가?
여전히 교회 안에 신분으로, 성으로, 가진 것으로, 외모로, 나이로 차별하고 있지는 않는가?
차별받는 것은 싫어하면서 정작 본인이 차별하는 것은 없는가?
만약 자신이 중재자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은혜로운 방법이라고 여기는가?
상대방의 사랑과 섬김을 악용하지는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예수님을 위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화평케 하는 것이 아니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늘 험담과 악담을 하지는 않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는 존재인가?
섬김이 자발적인가?
대가를 바라고, 대가를 빌미로 사용하는 것은 없는가?
 
오늘 하루,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에서 용서받은 죄인 됨을 알고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믿음과 은혜와 기도로 지혜롭게 해결하여
화평과 평안을 누리는데 앞장서는 동역자요 모두에게 유익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